부산 변호사 한병철의 글로벌 법률 가이드 10.
- 음주운전 차에 다쳤다면, 국적은 묻지 않는다
◇ 외국인 피해자도 똑같이 보호받는다 - 급한 합의가 가장 큰 손해다

파란불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갑자기 차 한 대가 멈추지 않고 들어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 천장이 보인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이때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생각이 있다.
"신고하면 내 비자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이 두려움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비자 때문에 신고를 미루는 사람이 많다. 한국말이 서툴러 그냥 참는 사람도 많다.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피해자는 가해자가 아니다.
음주운전 사고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로 체류자격에 불이익이 생기지는 않는다.
한국 법은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국적을 먼저 묻지 않는다.
흔한 착각이 하나 더 있다.
"내가 합의해 줘야 사건이 끝난다."
음주운전 사고는 그렇지 않다.
음주운전 사고는 용서로 끝나지 않는다
보통의 가벼운 교통사고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다.
이를 반의사불벌(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 원칙)이라고 한다.
◇ 음주운전은 ‘12대 중과실’ 형사처벌 예외 없어
음주운전 사고는 그 예외다.
음주운전 중 사람을 다치게 하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12대 중과실'에 해당한다. 가해자가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도, 피해자와 합의했어도, 형사처벌을 막지 못한다.
그래서 핵심은 가해자의 사과가 아니라 법의 구조다.
이 구조가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당신이 서둘러 용서하지 않아도, 가해자는 법의 책임을 진다. 그러니 두려움 때문에, 또는 한국 생활이 불편해질까 봐, 낮은 금액에 급히 합의할 이유가 없다.
여기에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위험운전치사상(술에 취해 정상 운전이 곤란한 상태로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숨지게 한 죄)이 함께 적용될 수 있다. 사람을 다치게 하면 1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 숨지게 하면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이다.
◇ 형사처벌과 별개로 손해 배상 받을 권리가 있다
형사처벌과 별개로, 당신은 손해를 돈으로 배상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받을 수 있는 항목은 치료비 하나가 아니다.
치료비가 있다.
휴업손해(다쳐서 일을 못 한 기간의 수입)가 있다.
상실수익(장애가 남아 앞으로 못 벌게 되는 소득)이 있다.
위자료(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가 있다. 음주운전은 중과실이라, 위자료가 일반 사고보다 높게 인정되는 경향이 있다.
다쳤다면, 순서대로 움직인다. 두려움은 잠시 접어두고 시간 순서로 정리한다.
먼저 오늘 안에 할 일이 있다.
병원에서 진단서와 진료 기록을 남긴다. 이 기록이 나중에 위험운전치사상 적용과 손해배상의 핵심 근거가 된다. 사고 현장 사진, 블랙박스, 주변 폐쇄회로(CCTV) 위치를 확인한다. 목격자가 있으면 연락처를 받아 둔다. 한국말이 어렵다면 통역의 도움을 요청한다.
다음 며칠 안에 할 일이 있다.
가해 차량의 보험사와 신원을 확인한다. 만약 가해자가 도망쳤거나(뺑소니) 가해 차량에 보험이 없다면, 정부가 일정 한도 안에서 먼저 보상하는 정부보장사업(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이 있다. 외국인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제외되지는 않는다. 다만 보상 범위와 한도는 사안에 따라 달라진다.
절대 하지 말 일도 있다.
가해자나 그 가족이 병원으로 찾아와 현금을 내밀며 합의를 재촉할 때, 그 자리에서 서명하는 일이다.
후유증은 시간이 지나야 드러난다. 다친 직후 받은 적은 금액에 합의해 버리면, 나중에 생긴 후유장해(사고 뒤 남는 장애)에 대한 보상은 받기 어려워진다.
"모든 합의는 변호사나 손해사정사를 통해 진행하겠다"고 분명히 말하고, 연락 창구를 하나로 정리한다.
◇ 변호사가 들어오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피해자 사건에서 변호사의 역할은 큰 금액을 약속하는 일이 아니다. 정당한 몫을 지키는 일이다.
증거를 정리한다. 진단 기록과 사고 자료를 모아 가해자의 음주 사실과 피해의 크기를 분명히 한다.
절차를 고른다. 형사 고소, 민사 손해배상, 보험 청구를 어떤 순서로 진행할지 설계한다.
타이밍을 본다. 후유증이 확정되기 전에 합의하지 않도록, 합의 시점을 조절한다. 성급한 합의가 가장 큰 손해다.
실수를 막는다. 심리적 압박에 못 이겨 저액에 합의하거나, 여러 사람과 따로 이야기하다 진술이 엇갈리는 실수를 막는다.
한 가지 덧붙인다. 음주운전 사고에서는 가해자 보험사가 피해자에게 지급한 뒤 가해자에게 다시 돌려받는 구상권(보험사가 대신 낸 돈을 가해자에게 청구하는 권리)을 행사하는 구조가 있다. 즉, 음주 사고의 책임은 결국 가해자 본인에게 무겁게 돌아간다. 피해자가 위축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사고를 당한 외국인이 기억할 것은 단 하나다. 법은 피해자에게 국적을 묻지 않는다. 당신이 두려워하며 서둘러 용서하는 순간, 정작 손해는 당신에게 남는다.
지금 필요한 건 미안하다는 말을 받아주는 일이 아니라, 진단서를 손에 쥐는 일이다.
한병철 / 법무법인 대한중앙 대표 변호사
(대한변협 인증 형사전문변호사 · 부동산전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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