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천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총으로 쏘아 죽음에 이르게 한 비극이 있었죠. 20년 전에 이혼하고 무직으로 전처의 생활비에 의존해서 혼자 살던 남자의 엽기적인 범행은 상식 밖의 요소가 많아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파우즐 리벤지 필리사이드(spousal revenge filicide), 배우자에 대한 복수를 목적으로 자녀를 살해한다는 범죄심리학 용어가 존재할 만큼 복수심에 눈이 멀어 자식을 죽이는 범죄는 그리스신화의 이아손의 아내, 메데이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지만 어린 자녀가 아닌 다 자란 성인 아들을 살해한 아버지는 전대미문의 사건이라 전문가조차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기사를 처음 읽었을 때, 한 노스님이 쓴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사업으로 성공한 아내, 무직인 남편, 장성한 자녀까지 인천 사건과 흡사합니다. 다만 이 이야기에 나오는 아버지는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멀쩡하던 자녀들이 원인 모를 고통에 시달리다 연이어 돌연사를 한 건 아버지가 자살한 후부터였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원망이 깊었습니다. 그런데 왜 아내가 아닌 생전에 사랑했던 자녀를 괴롭힐까요? 스님은 배우자에 대한 원망이 부성애마저 잡아먹고 자식을 복수의 수단으로밖에 보지 못하는 원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두 비극의 중심엔 원한에 사무친 아버지가 있습니다.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불통이었습니다. 경제적인 의존에 의한 상대적인 박탈감, 그리고 소통과 대화의 부재가 키운 피해의식과 타인에 대한 원망이 자아를 잡아먹고 복수심 덩어리로 변하게 해 살아서도 죽어서도 원귀의 패악질만 남았습니다.
사티어스의 의사소통 유형 중 회피형은 갈등을 일단 피하려고만 하고 비난형은 일단 공격하려고만 합니다. 겉으로는 온순하게 보이는 회피형은 문제의 불씨를 안에서 키우고 있기 때문에 자칫 걸어 다니는 폭탄이 될 수 있고 남 탓부터 하는 공격형은 사람들에게 외면받아 외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쪽이든 극단으로 가면 불통으로 인한 고립된 삶에 천착하게 됩니다. 소통 없는 고립은 확증편향을 일으켜 한가지 생각에만 사로잡힐 가능성이 커집니다. 인터넷 검색을 아무리 해도 편식만 심화시키는 필터 버블현상으로 자신이 만든 망상에 갇혀 버리는 거죠.
안타까운 점은 중년 이상의 남자들이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표현하는 소통의 방법을 알지 못해 스스로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어린 시절부터 과묵한 아버지 상을 당연히 여기고 감정을 숨겨야 남자답다는 인식을 받아들이며 자랐기 때문에 말을 안 해도 가족이 알아 주기를 바라거나 맥락 없는 권위적인 말로 흐름을 깨고선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불만이나 분노에 휩싸인 채 집안에서 외로운 섬을 자초하는 거죠. 함께성장인문학 연구원의 정예서 선생님은 오랜 상담을 통해 불통이 여러 문제의 핵심임을 간파하고 건강한 소통을 위한 대화법, ‘마법의 대화 4 스텝’을 정립했습니다. 먼저 상대방의 느낌을 관찰하고 존중해 준 뒤, 내 느낌을 말하고 내 요청 사항을 부드럽게 말하는 네 단계(4 스텝)를 매번 적용하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특히 갈등 상황을 돌이켜보면, 타인에 대한 공감만 하고 자신의 느낌이나 요구 사항을 말하지 못하거나 타인에 대한 관찰 없이 자기 할 말만 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의 불쾌한 감정을 말하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공격성이 높아져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을 이고 다니는 셈이고 타인의 감정을 무시하고 내 얘기만 하면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잔소리를 하는 셈이니 어느 쪽도 온전한 소통이라 할 수 없습니다. 눈치 보지 않고 화내지 않고 상대방의 감정을 인정해 주고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까지 부드럽게 말하는 소통법은 부단히 의식하고 노력해야 하는 숙제입니다.
‘기계적이고 습관화된 대화는 인간관계의 정체를 가져오며 인간관계의 정체는 관계 그 자체의 퇴화를 가져오며 필경은 양 당사자에게 오히려 부담과 질곡만을 안겨주게 되는 것입니다.’
신영복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결혼하는 형님에게 쓴 엽서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애정없는 형제간은 아니었지만 독방에 갇혀 돌이켜보니 창의와 노력이 결여된 대화의 문제점이 확연히 보였을 겁니다.
가까운 가족일수록 대화에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합니다. 불통은 화약고보다 더 위험합니다.
여러분의 가족 간 대화는 안녕한지 ‘마법의 대화 4 스텝’으로 점검해보고 진정한 소통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K People Focus 차경숙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정예서함께성장인문학연구원 수석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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